성실함은 당신을 죽인다
1월 1일. 새 다이어리를 샀다. '매일 조금씩'을 다짐했다. 3일은 완벽했다. 4일째 하루를 빼먹었다. 5일째 다이어리는 책상 구석으로 밀려났다. 12월에 발견된 다이어리는 앞장만 까맣고 나머지는 백지다.
"나는 끈기가 없어." "나는 성실하지 못해." 죄책감이 당신을 갉아먹는다.
틀렸다. 끈기가 부족한 게 아니다. 당신은 '성실함'이라는 독을 마시고 있었다.
농부와 사냥꾼
세상은 농부를 찬양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같은 양의 씨를 뿌린다. 꾸준히 물을 준다. 예측 가능한 수확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학교가 농부를 위해 설계됐다. 회사가 농부를 위해 돌아간다. 생산성 책이 농부를 위해 쓰였다.
문제는 당신이 농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은 사냥꾼이다. 사냥꾼의 뇌는 '반복'을 '안전'이 아니라 '지루함'으로 읽는다. 지루함은 도파민 공급을 차단한다. 도파민이 끊기면 전두엽이 멈춘다. 멈추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연료가 없는 차에 페달을 밟으라고 하는 것이다. 안 간다. 갈 수가 없다.
매일 똑같이 하라는 조언은 사냥꾼에게 이렇게 들린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똑같은 속도로 들판을 뛰어다녀라." 사냥감이 없는데 뛰면 탈진한다.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다. 사냥감 없는 들판을 뛰라고 강요받았기 때문에 지친 것이다.
치타는 조깅을 하지 않는다
치타를 본 적 있나. 치타는 마라톤을 안 한다. 풀을 뜯으며 하루 종일 걷는 소가 아니다.
치타는 기다린다. 사냥감이 나타나면 폭발한다. 초속 30미터로 질주한다. 70초 안에 끝낸다. 사냥이 끝나면 쉰다. 늘어지게 잔다. 다음 사냥감이 나타날 때까지. 이게 치타의 리듬이다. 치타에게 "매일 꾸준히 조깅하라"고 하면 굶어 죽는다.
당신의 뇌도 똑같다. 과집중이라는 무기가 있다. 흥미가 생기면 12시간을 밥도 안 먹고 일한다. 남들이 일주일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낸다. 그런데 왜 남들처럼 8시간씩 나눠서 일하려고 하나. 그건 당신의 강점을 버리고 약점으로 싸우는 짓이다.
소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당신은 치타다. 치타답게 사냥해라.
꾸준함은 도파민의 무덤이다
신경전형적 뇌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올드타입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반복은 안정이다. 루틴은 편안함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면 뇌가 보상을 준다. "잘하고 있어." 그래서 21일 습관 만들기가 통한다. 66일 루틴 정착이 가능하다.
뉴타입의 뇌는 다르게 작동한다. 반복은 안정이 아니라 위협이다. "또 이거야?" 뇌가 경고등을 켠다. 도파민 분비가 뚝 끊긴다. 집중이 안 된다. 손이 안 움직인다. 3일째 되면 모든 게 무너진다.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하드웨어의 차이다. 올드타입 소프트웨어를 뉴타입 하드웨어에 설치하면 충돌이 난다. 당연히 안 돌아간다. 버그가 아니다. 호환이 안 되는 것이다.
30년 동안 자책했다. "나는 왜 이것도 못 하지." 틀렸다. 당신이 못 한 게 아니다. 당신에게 맞지 않는 방식을 강요받은 것이다.
파도를 타는 법
일정한 루틴을 만들려고 애쓰지 마라. 대신 당신의 에너지 파도를 타라.
첫째, 스프린트와 휴식을 허락해라. '매일 1시간씩 공부하기'는 실패한다. 대신 '필 받으면 5시간 몰아서 하기'를 허락해라. 그리고 다음 날은 쉬어라. 당신의 생산성은 '평균'이 아니라 '총합'으로 증명된다. 90분에서 120분 동안 폭발적으로 쏟아붓고 반드시 뇌를 꺼라. 죄책감 없이.
둘째, 위기를 사냥감으로 삼아라. 마감 직전의 초인적인 힘. 그걸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이 당신의 사냥 본능이다. 일을 미리미리 하지 못한다고 자책하지 마라. 대신 마감을 전략적으로 배치해라. 스스로 가짜 마감을 만들어라. 타인에게 공표해서 사회적 압박을 만들어라. 그 긴장감이 당신의 엔진을 켠다. 위기가 연료다.
셋째, 새로움을 주유해라. 지루하면 죽는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장소를 바꿔라. 카페, 도서관, 공원, 라운지. 도구도 바꿔라. 펜, 키보드, 앱, 노트. 환경의 변화가 뇌에게 신호를 준다. "이건 새로운 사냥이야." 그 착각이 도파민을 만든다. 착각이어도 상관없다. 뇌가 작동하면 된다.
성실함의 재정의
"그러면 노력 안 해도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가짜다.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더 많이. 올드타입은 매일 1시간씩 나눠서 7시간을 쓴다. 뉴타입은 하루에 12시간을 쏟고 이틀을 쉰다. 총량은 비슷하다. 분포가 다를 뿐이다.
올드타입의 성실함은 '매일'이다. 뉴타입의 성실함은 '총합'이다. 올드타입은 꾸준히 흐르는 강이다. 뉴타입은 차올랐다가 터지는 댐이다. 둘 다 물을 보낸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나는 뉴타입이라서 노력 안 해도 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 것이다. 진짜는 이렇게 말한다. "미친 듯이 노력한다. 다만 내 방식으로."
죄책감을 버려라
다이어리를 채우지 못해도 괜찮다. 루틴이 3일 만에 무너져도 괜찮다. 그건 실패가 아니다. 당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다 찢어진 것이다. 옷이 문제지 몸이 문제가 아니다.
죄책감을 버려라. 죄책감은 도파민을 더 고갈시킨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못 했어 → 자책 → 도파민 바닥 → 더 못 함 → 더 자책."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못 한 날은 쉬는 날이다. 충전하는 날이다. 다음 사냥을 위해 기다리는 날이다.
치타도 사냥에 실패한다. 성공률이 40%밖에 안 된다. 10번 중 6번은 놓친다. 그래도 치타는 자책하지 않는다. 돌아와서 쉬고 다음 사냥감을 기다린다. 그게 치타의 방식이다.
당신도 그래도 된다.
20년의 진실
20년 동안 틀렸다고 배웠다. 끈기가 없다고. 성실하지 못하다고. 의지력이 약하다고. 매년 1월에 다이어리를 사고 매년 12월에 백지를 발견했다.
진실은 이거다. 당신은 끈기가 없는 게 아니었다. 농부의 끈기를 사냥꾼에게 강요했을 뿐이다. 당신은 성실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소의 성실함을 치타에게 요구했을 뿐이다.
남들의 성실함을 흉내 내지 마라. 그건 당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매일의 루틴이 아니라 폭발의 순간이다. 꾸준함이 아니라 몰입이다.
기다려라. 흥미가 생기면 물어뜯어라. 그리고 쉬어라. 자책하지 말고 인정해라.
당신은 밭을 가는 소가 아니다. 초원을 달리는 치타다. 치타는 조깅을 하지 않는다. 달릴 때 달리고, 쉴 때 쉰다. 그게 치타가 살아남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