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나쁜 게 아니다. 램이 작은 것이다.

"이따가 꼭 해야지." 10분 뒤, 당신은 그 생각을 완전히 잊었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는데 방에 도착하니 왜 왔는지 모른다. 열쇠를 어디 뒀는지 30분째 찾고 있다. 분명 중요한 거였는데, 뭐였더라. 20년간 이런 일이 반복됐다면 당신은 아마 이렇게 결론 내렸을 것이다. "난 머리가 나쁘구나." "기억력에 문제가 있구나."

틀렸다. 당신의 머리는 나쁘지 않다. 하드디스크는 거대하다. 램이 4MB인 것뿐이다.

컴퓨터를 생각해보자. 하드디스크는 장기 저장 공간이다. 수년 전 일도 저장하고 있다. 램(RAM)은 작업 기억이다. 지금 당장 처리하는 정보를 띄워두는 공간이다. 하드디스크가 아무리 커도 램이 작으면 컴퓨터가 버벅거린다. 탭을 10개만 열어도 다운된다. 당신의 뇌가 정확히 그렇다.

뇌 영상 연구들이 이걸 확인했다. 뉴타입 뇌의 작업 기억 관련 영역은 올드타입과 다르게 작동한다. 특히 정보량이 늘어나거나 처리가 복잡해지면 차이가 극명해진다. 올드타입 뇌는 부하가 올라가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처리한다. 뉴타입 뇌는 임계점을 넘으면 급격히 무너진다. 작업 기억의 핵심 통제 기능에서 매우 큰 결함이 관찰된다는 연구도 있다. 램이 작은 것이다. 용량이 아니라 아키텍처가 다르다.

이게 왜 치명적인가. 작업 기억은 단순히 "기억"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업 기억은 추론, 의사결정, 계획 수립, 목표 유지의 기반이다. 지금 하던 일을 기억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목표를 띄워둬야 딴짓을 안 한다. 여러 정보를 동시에 들고 있어야 비교하고 판단한다. 램이 작으면 이 모든 게 무너진다. 당신이 산만해 보이는 건 주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작업 기억에서 정보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따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정보는 램에 올라간다. 올드타입 뇌는 그 정보를 꽤 오래 띄워둔다. 뉴타입 뇌는 다른 자극이 들어오는 순간 덮어써버린다. 강제 종료다. 복구 불가. 당신이 깜빡한 게 아니다. 뇌가 자동으로 삭제한 것이다.

더 나쁜 소식이 있다. 이 결함은 훈련으로 잘 안 고쳐진다. 작업 기억 훈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단기적으로 작업 기억 점수는 올라간다. 하지만 그 효과가 일상생활이나 다른 인지 능력으로 전이되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램을 업그레이드하려고 수년간 노력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램이 4MB라는 걸 받아들이고, 다르게 싸워야 한다.

해답은 외부 뇌를 만드는 것이다. 외골격(Exoskeleton)을 입어라.

토니 스타크는 수트 없이 평범하다. 수트를 입으면 히어로다. 아이언맨 수트가 토니의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듯, 외부 시스템이 당신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머릿속에 정보를 띄워두려 하지 마라. 그건 4MB 램을 갉아먹는 짓이다. 뇌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기"가 아니라 "생각하기"다. 기억은 밖으로 던져라.

첫 번째 원칙. 기억하지 마라, 적어라.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 즉시 외부로 내보내라. 포스트잇, 노션, 메모장, 녹음기. 뭐든 좋다. 중요한 건 속도다. "나중에 적어야지"는 이미 늦었다. 그 생각은 10초 뒤에 증발한다. 주머니에 항상 펜을 넣고 다녀라. 손목에 작은 메모장을 차라.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바로 메모 앱이 뜨게 설정해라. 떠오른 생각을 0.5초 안에 캡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이건 귀찮은 습관이 아니다. 생존 전략이다. 당신의 뇌는 휘발성 메모리다.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날아간다. 적는 행위는 휘발성 데이터를 비휘발성 저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백업이다. 이걸 습관이 아니라 본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원칙.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것이다. 뉴타입 뇌에게 "Out of sight, out of mind"는 비유가 아니라 물리적 현실이다. 해야 할 일을 폴더 안에 넣는 순간 그 일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파일을 열어야 볼 수 있는 할 일 목록은 의미가 없다. 눈앞에 없으면 뇌가 인식하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을 물리적으로 눈앞에 둬라. 책상 위에 펼쳐라. 모니터 옆에 붙여라. 현관문에 테이프로 고정해라. 화이트보드를 사서 벽에 걸어라. 디지털이 편하면 모니터 한쪽에 항상 할 일 창을 띄워둬라. 최소화하지 마라. 숨기지 마라. 시야에서 사라지면 끝이다.

이 원칙은 물건에도 적용된다. 열쇠를 매번 잃어버린다면 열쇠 걸이를 현관문 바로 옆에 달아라. 들어오는 동선에서 반드시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 약을 깜빡한다면 칫솔 옆에 둬라. 아침에 반드시 보는 곳. 물건의 "집"을 정하고, 그 집이 시야 안에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원칙. 머리에서 결정을 빼라. 뉴타입 뇌의 램은 결정을 내리는 데도 쓰인다. 매일 아침 "오늘 뭐 입지?"를 고민하면 그만큼 램이 소모된다.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다. 작은 결정들이 쌓이면 정작 중요한 일에 쓸 인지 자원이 바닥난다.

루틴을 만들어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라. 아침에 입을 옷을 전날 밤에 꺼내둬라. 매일 먹는 점심 메뉴를 3개로 고정해라. 스티브 잡스가 매일 같은 옷을 입은 이유가 있다. 사소한 결정에 램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동화할 수 있는 건 전부 자동화해라. 뇌가 "선택"하는 횟수를 최소화해라.

네 번째 원칙. 알림에 의존해라. 뉴타입 뇌는 시간 감각도 이상하다. 30분이 5분처럼 느껴지고, 5분이 30분처럼 느껴진다. "3시에 회의"라고 머릿속에 넣어두면, 정신 차려보니 3시 20분이다. 시간을 추적하는 것도 램을 먹는다. 그 부담을 외부로 넘겨라.

모든 약속에 알림을 걸어라. 10분 전, 30분 전, 1시간 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걸어라. 반복되는 일에는 반복 알림을 설정해라. 캘린더를 종교처럼 믿어라. 뇌가 시간을 기억하게 두지 마라. 기계가 대신 기억하게 해라.

다섯 번째 원칙. 인박스를 비워라. 이메일, 메시지, 알림. 처리 안 한 것들이 쌓이면 그 자체로 인지 부하가 된다. "저거 나중에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백그라운드에서 램을 잡아먹는다. 열린 탭이 100개인 브라우저와 같다.

들어오는 정보를 즉시 처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2분 안에 처리할 수 있으면 즉시 처리해라. 아니면 할 일 목록으로 옮기고 인박스에서 삭제해라. "나중에"라는 폴더를 만들지 마라. 그건 "영원히 안 할 일" 폴더다. 처리하거나, 명시적으로 버려라. 어중간하게 띄워두는 게 최악이다.

여섯 번째 원칙. 환경을 신호로 만들어라. 램이 작으면 맥락 전환이 치명적이다. "지금 뭐 하고 있었지?"를 매번 새로 로딩해야 한다. 물리적 공간이 신호를 줘야 한다. 책상에 앉으면 뇌가 자동으로 "일 모드"로 전환되어야 한다. 침대에 누우면 "수면 모드"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간을 기능별로 분리해라. 일하는 곳에서는 일만 해라. 쉬는 곳에서는 쉬기만 해라. 같은 공간에서 여러 일을 하면 뇌가 혼란스러워한다. 신호가 섞인다. 원룸에 살아도 책상과 침대를 명확히 구분해라. 가능하면 커튼으로 물리적으로 나눠라. 환경이 뇌에게 "지금 뭘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이 모든 전략의 핵심은 같다. 뇌를 믿지 마라. 뇌에게 기억을 맡기지 마라. 뇌에게 시간 추적을 맡기지 마라. 뇌에게 사소한 결정을 맡기지 마라. 뇌의 한정된 자원을, 뇌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시켜라. 창의적 사고, 문제 해결, 깊은 분석. 나머지는 전부 외부 시스템에 위임해라.

작업 기억 훈련에 수년을 투자해서 4MB를 8MB로 만들려는 건 비효율적이다. 그 시간에 외부 시스템을 구축해라. 16GB 램을 밖에 달아라. 포스트잇, 노션, 캘린더, 알림, 화이트보드. 이것들이 당신의 외부 램이다. 확장 메모리다.

뉴타입은 뇌 안에서 싸우면 진다. 뇌 밖에서 싸워야 이긴다. 외골격을 입어라. 도구가 당신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4MB 램으로도 16GB짜리 일을 할 수 있다.

생산성 전문가들은 "집중력을 높여라", "기억력을 훈련해라"라고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충분한 램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램이 부족한 사람의 현실을 모른다. 부족한 걸 채우려 하지 마라. 부족한 걸 우회해라. 하드웨어를 바꿀 수 없으면 소프트웨어를 바꿔라. 소프트웨어도 안 되면 주변기기를 달아라.

당신의 뇌가 이상한 게 아니다. 운영 체제가 다를 뿐이다. 다른 운영 체제에는 다른 최적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