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은 사기다

오전 9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커서만 깜빡인다.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보고서 작성. 그런데 손이 안 움직인다. 10분 뒤, 당신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또 실패했다. "난 왜 이리 의지가 약할까." "왜 5분도 못 버틸까." 20년간 그렇게 자책했다면, 이제 그만해도 된다.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다. 디젤 엔진에 휘발유를 붓고 있었을 뿐이다.

생산성 산업은 거대한 사기다. 책 100권, 앱 50개, 플래너 30권. 전부 같은 전제 위에 서 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목표를 쪼개라." "습관을 만들어라." 이 조언들이 당신에게 안 통했다면, 당신이 부족한 게 아니다. 애초에 다른 종류의 엔진을 가진 사람에게 잘못된 연료를 권한 것이다.

올드타입 뇌는 '중요성'에 반응한다. 상사가 시켰으니까, 마감이니까, 중요하니까 한다. 보상이 멀리 있어도 참고 달린다. 사회는 이런 뇌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학교도, 회사도, 생산성 책도 전부 이 뇌를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당신의 뇌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타입 뇌는 '흥미'로만 움직인다. 중요한 건 알지만 손이 안 간다. 재미없으면 전두엽 전원이 꺼진다. 지루함이 물리적 고통처럼 느껴진다. 뇌 영상 연구들이 이걸 확인했다. 뉴타입 뇌의 보상 경로는 올드타입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같은 일을 해도 뇌가 받는 보상이 다르다. "중요하니까 해"라는 말은 올드타입에겐 연료지만, 뉴타입에겐 공기다. 엔진이 안 돈다.

그래서 뉴타입은 마감 전날 밤에 초인이 된다. 갑자기 8시간 연속으로 일한다.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간다. 과집중(Hyperfocus) 모드다. 이걸 보고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렸다. 그건 '의지력'이 아니다. 마감이라는 긴급함이 도파민을 강제로 분출시킨 것이다.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번아웃이 온다.

윌리엄 도슨(William Dodson)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수천 명의 환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일단 몰입하면, 못 하는 일이 있었나요?" 대부분의 대답은 같았다. "몰입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능력이 아니다. 시동이다. 시동이 안 걸리는 차를 뒤에서 밀고 가는 게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다.

도슨은 뉴타입 뇌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연료를 정리했다. 흥미(Interest), 새로움(Novelty), 도전(Challenge), 긴급함(Urgency), 열정(Passion). 앞글자를 따서 INCUP이라 부른다.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엔진이 돈다. 하나도 없으면 꺼진다. 올드타입에게 먹히는 "책임감", "의무", "장기적 보상" 같은 건 여기 없다. 뉴타입 뇌에겐 작동하지 않는 연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연료를 직접 설계해야 한다.

첫 번째, 긴급함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라. 뽀모도로를 쓰되, 얌전히 타이머만 돌리지 마라. 게임을 해라. "이 이메일 15분 안에 보내면 승리, 못 하면 패배." 스스로에게 내기를 걸어라. 뇌는 진짜 마감과 가짜 마감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긴급함의 느낌만 있으면 도파민이 나온다. 지루한 반복 작업을 타임어택으로 바꾸면 완전히 다른 일이 된다.

두 번째, 옆에 사람을 둬라. 혼자 일하면 딴짓한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뇌가 깨어난다. 바디더블링(Body Doubling)이라고 부른다. 감시가 아니다.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되는 원리다. 사회적 상황이 도파민 경로를 활성화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뇌에 연료가 채워진다. 물리적으로 옆에 없어도 된다. 줌을 켜놓고 각자 일해도 된다. 유튜브에서 "study with me" 영상을 틀어놔도 된다. "누군가 함께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면 충분하다. 2024년에 나온 연구는 바디더블링이 과제 시작과 완료 모두에 효과적이라는 걸 보여줬다.

세 번째, 시작의 문턱을 발목 높이로 낮춰라. "방 청소하기"는 너무 크다. 뇌가 거부한다. "쓰레기 하나 줍기"로 바꿔라. 30분 운동이 아니라 운동화 신기. 보고서 쓰기가 아니라 파일 열기. 거창한 목표는 도파민을 고갈시킨다. 아주 사소한 성공이 즉각적인 보상을 주고, 그 보상이 다음 행동을 부른다. 뉴타입 뇌는 시동 거는 게 제일 힘들다. 일단 시동이 걸리면 관성으로 굴러간다. 키 돌리는 힘을 최소화해라.

네 번째, 환경을 신호로 만들어라. 의지력으로 유혹을 이기려 들지 마라. 뉴타입 뇌에게 의지력 싸움은 지는 게임이다. 대신 환경을 바꿔라. 침대에서는 자기만 하고, 책상에서는 일만 해라. 뇌에게 명확한 신호를 줘라. 해야 할 일을 눈앞에 둬라. 방해 요소는 시야에서 치워라.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어라. 안 보이면 없는 것이 뉴타입 뇌다. 알림을 끄고, 책상을 치워라. 물리적 환경이 정리되면 뇌의 혼란도 잦아든다.

다섯 번째, 새로움을 주입해라.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하면 뇌가 죽는다. 카페를 바꿔라. 음악을 바꿔라. 도구를 바꿔라. 노션 쓰다가 종이로 바꿔라. 종이 쓰다가 화이트보드로 바꿔라. 내용은 같아도 형식이 바뀌면 뇌는 새로운 일이라고 인식한다. 새로움 자체가 도파민이다.

여섯 번째, 흥미와 연결해라. 해야 하는 일에 재미 요소를 끼워 넣어라. 지루한 데이터 정리를 하면서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청소하면서 넷플릭스를 튼다. 이걸 탠저블 이머전(Tangential Immersion)이라고 부른다. 지루한 일과 재미있는 일을 동시에 해서 전체 경험의 도파민 수준을 올리는 거다. 올드타입 관점에선 딴짓이다. 뉴타입에겐 생존 전략이다.

이 모든 전략의 핵심은 같다. 의지력에 기대지 마라. 뇌를 속여라. 당신의 뇌는 고장 난 게 아니다. 작동 방식이 다를 뿐이다. 올드타입 세상에서 뉴타입으로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도구가 필요하다.

토니 스타크는 수트 없이 평범하다. 수트를 입으면 히어로다. 흥미, 긴급함, 환경 설정, 바디더블이 당신의 수트다. 억지로 의자에 묶어두면서 자책하지 마라.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인내심이 아니다. 당신의 뇌가 춤출 수 있는 무대다.

생산성 전문가들은 대부분 올드타입이다. 그들이 올드타입을 위해 쓴 책이 당신에게 안 통한 건 당연하다. 당신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연료가 틀렸다. 엔진이 달랐다. 그걸 아무도 안 알려줬을 뿐이다.